vintigesynth.com에 적혀 있는 casio sk-1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Well, people call it the poor man’s sampler. It is the cheapest sampler in the world.” 그리고 그 뒤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뒤 따른다. “ Followed by the SK-5, the second cheapest in the world.” 크리스마스 이브 전 날 나는 세계에서 두번째로 값이 싼 샘플러 키보드를 가지게 되었다. 본래 구입하고 싶어했던 모델은 casio sk-1이었다. 무엇보다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샘플러’라는 상징적 의미가 탐이 났으며 (적어도 ‘세계에서 두번째로 저렴한 샘플러’라는 표현보다는 간지나지 않는가.) 빈티지 키보드만이 들려줄 수 있는 동네 문방구 앞에서 구워 먹는 쫀드기같은 따뜻한 사운드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casio sk-1은 발매된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종종 쓰이곤 하는데 michael andrews는 ‘me and you everyone we know’ ost에서 circuit bending한 casio sk-1을 메인악기로 썼고 대만의 인디팝 밴드 my little airport 역시 casio sk-1만이 들려줄 수 있는 사운드를 이용해 몽글몽글한 인디팝을 들려주고 있다. 그외에도 beck, fatboy slim, autechre, blur와 같은 팀들이 circuit bending한 sk-1을 자신들의 음악에 알게 모르게 사용해 왔다고 한다.


casio sk-1 commercial

circuit bent casio sk-1

me and you everyone we know trailer
my little airport - 浪漫九龍塘


casio sk-1을 구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황학동을 이 잡듯이 뒤지거나 ebay를 이용하는 방법 등이 있는데 전자는 유사 casio 키보드를 잔뜩 발견하는 것으로 끝났고 후자는 본체보다 비싼 배송료에 늘 번번이 있지도 않은 뒷발이 잡히곤 했었다. 그러던 중 미앤사에 올라온 casio sk-5 판매글을 보고 sk-5 샘플링 타임보다 조금 긴 3초 정도 고민하다 구입을 결정했다. 내 나이 쯤 되면 위로가 필요할 땐 스스로 산타클로스가 되는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내게 이것을 판매한 분은 영국에서 이것을 갖고 놀았다는 너드청년이었다. (제품 설명 글에서 mum과 circuit bending을 언급하는 걸 보고 분명 말끔한 너드일거라 생각했는 데 실제로 만나보니 정말 그랬다.) 국내에서는 구하기도 쉽지 않고 팔아도 크게 돈이 되거나 하지 않는 건 아닌데 아마도 크리스마스 때 선물을 주고 싶은 너드여자친구가 있었던 모양이다. 어떻게 그 너드청년 크리스마스는 잘 보냈을지 궁금하네. 

casio sk-5는 기본적으로 sk-1과 동일한 프리셋 사운드를 갖고 있으며 (개중에는 sk-1의 사운드가 더 낫다는 평도 있다.) sk-1보다 많은 기능을 제공한다. sk-5와 sk-1이 다른 점은-

- 전원이 꺼져도 샘플링된 사운드가 보존된다.
- sk-1은 프리셋이 5개지만 sk-5는 프릿셋이 8개다.
- sk-1은 1개의 1.4초짜리 샘플만 저장할 수 있지만 4개의 0.7초짜리 샘플 혹은 2개의 1.4초짜리 샘플을 저장할 수 있다. 
- 샘플을 reverse, loop 그리고 tuning할 수 있다.
- 샘플을 플레이할 수 있는 4개의 패드가 있다.
- 내장된 샘플을 플레이할 수 있는 4개의 패드가 더 있다.
- 총 7개의 데모 사운드가 내장되어있다. 

이 정도면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샘플러’라는 간지나는 타이틀은 못 얻어도 괜찮지 않겠어? 이렇게 나는 크리스마스 이브를 앞에 두고 내가 구입한 것들 중 가장 작고 가장 저렴한 장난감을 하나 선물받게 되었다.

fatcat eung-3 & casio sk-5
크리스마스 이브 날은 고양이를 한마리 떠안게 되었다. 요새 불량청소년만 드나든다는 놀이터에서 불량어른 futuretv양이 업어온 고양이인데 마땅히 키울 곳이 없어 이곳 저곳을 전전하다 집을 구할 때까지 2,3주 정도 맡아주게 되었다. 소유권 분쟁으로 아직 정해진 이름이 없어 무어라 부를까 고민하다 순한 성격과 그에 대비되는 카리스마 있는 표정 그리고 정확히 3대 7의 비율을 자랑하는 가르마 등을 고려 임시로 응삼이(eung-3)라 부르기로 했다. 여기에는 내가 이름을 붙여준 회사 앞 주차된 차 위에 누워 자곤 하던 속 편한 얼룩고양이 맘보3000(mambo3000)의 이름을 계승한다는 의미도 있다. 직접 키우게 된 고양이로는 말라(marla)에 이은 두번째, 겪은 얼룩고양이로는 사루, 맘보3000에 이은 세번째 고양이다. 팜므파탈계열 삼색묘였던 말라와는 너무 다른 반응에 좀 당황스러웠고 그간 겪었던 얼룩 고양이들과 너무도 동일한 반응에 조금은 낯익은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지금까지 알아낸 이 녀석의 행동패턴은 다음과 같다. 
- 밥을 많이 먹는다.
- 똥도 많이 싼다.
- 잠도 많이 잔다.
- 운동은 거의 하지 않는다.
- 사람에게 잘 엉겨 붙는다.
특히 만난지 하루도 안 된 사람의 무릎 위에 올라와 앉아 얼굴을 들이밀며 그르렁거리는 이 녀석의 친화력은 좀 존경스럽기까지 한데, 나도 이녀석의 친화력을 배워 2009년에는 처음 본 예쁜 언니의 무릎도 단번에 벨 수 있는 남자가 되어야겠다 다짐했다. 이 녀석은 잘 엉겨 붙는 만큼 제법 뻔뻔하다. 보통은 사람이 있는 곳에 와 엉겨붙는 게 바람직한 고양이의 자세이건만 이 녀석은 자기가 있는 자리에서 내가 다가와 무릎을 내 줄 때까지 계속 야옹거리며 울어댄다. 보통 이런 고양이를 전문용어로 개냥이라 부르는 데 이런 상황에선 그 녀석이 주인고양이고 내가 개사람인 셈이다. 이 녀석이 제일 좋아하는 자리는 내 맥 의자인데 바닥에 누워 있다가도 내가 잠시 홍차를 타러 나가거나 하면 재빠른 속도로 내 의자를 차지하고 결코 자리를 내주지 않는다. 결국 나는 남은 자리를 헤집고 큰 엉덩이를 걸친 채 겨우 맥을 해야 하고. 아, 사과 꼭다리만 드시던 어머니의 마음이란 이런 것이었단 말인가. 울컥. 곰곰히 생각해봤는데 이 녀석이 이런 습성을 가진 건 본래 타고난 성격도 있지만 전주인이 그만큼 예뻐하며 키웠기 때문일 것이다. 근데 왜 주인은 이 녀석을 버린걸까. 매일 울어대며 달라 붙는 이 녀석에게 질려버린걸까 아니면 전세계에 불어닥친 경제 한파가 그 주인의 집에까지 닥친걸까. 맘보3000은 세상 모든 고양이의 적- 유,초딩들을 상대하다 결국 성격이 바뀌었는데 이 녀석은 다행히도 괴롭힘 당하는 일 없이 잘도 여기까지 왔구나. 매일 이쁨 받다가 여기까지 왔을 이 녀석을 생각하니 조금 짠한 기분이 든다. 비록 시한부 동거지만 함께 있을때 까지만이라도 잘해줘야겠다. 적어도 추운 겨울 이 녀석 덕분에 조금이나마 내 체온이 올라가지 않았던가. 여러분들도 2008년 한 해 따뜻하게 잘 마무리 하세요. 새해에는 부자 대신 더 크고 많은 오르가즘 느낄 수 있는 해가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