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SHADOW – startroducing private press

“잠깐 말장난 좀 치자면 dj shadow의 등장은 음악의 revolution이었으며 그의 행보는 음악의 evolution이었다. 하지만 그가 한 것은 단지 음악의 recycle이었을 뿐이다”

cut
& paste. 필자의 이름 우에에에의 첫번째 ‘에’를 걸고 장담하건데, 이 용어는 90년대 중반 이후 부작용이
걱정스러울 정도로 남용되었다. 처음엔 팝칼럼니스트들이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칸을 채우는 용도로 쓰기 시작했고, 그리고 새로운
조류에 기대어 음반을 팔아치워야하는 업자들에 의해, 그후엔 음악에 대해서 논하기 좋아하는 매니아들이, 이제는 브리태니카
백과사전에 실릴정도로 대중들에게도 널리 쓰이고 있다. 그 용어가 그만큼 널리 쓰이게 된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 이유는 이 용어가 음악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져왔기 때문일텐데, 기존 음악의 패러다임은 아무도 음악이 어디에서 오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음악은 우뇌에서, 심장에서, 발뒤꿈치에서, 남자의 경우는 고환에서, 여자의 경우는 자궁에서, 혹은 외계에서
올 수도 있었다. 즉 그것은 일종의 무기질과 같은 형태로 존재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뮤지션들은 술을 마시고 약을 하고 혹은
섹스를 하며 음악이 오기를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새로운 cut & paste라는 패러다임은 무기질이었던
그것을 유기질로 바꾸었다. LP, tape, radio, TV 등 우리주위에 존재하는 모든 소리에서 음악이 탄생하기
시작한것이다. 특히 그중에서도 근간이 된것은 favorite의 의미로, respect의 목적으로, 혹은 그것이 MDM만큼이나
최고이기 때문에 5,6,70년대의 funk/soul/jazz/psychedelic rock 과 같은 장르의 45회전 7인치 LP
single이었다. 이것은 많은 것을 시사하는데, 그전의 패러다임에 있던 음악들이 분명 과거와 연결되어있기는 하나 그 고리가
명확하지 않았던것에 비해, 인터넷이 공간의 경계를 허물어 한국에 있는 우리들도 우르과이에 사는 여자의 음모의 색깔이 무엇인지조차
확인할 수 있게 된것처럼, cut & paste는 과거의 음악과 현재의 음악사이에 건실한 연결고리를 만든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뭐가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마구잡이로 잘라지고 변형되어 붙여졌기에 건실한 연결고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결고리의
맞은편에 있는것과는 매우 다른 새로운 것이었다. 아울러 그것은 유기질이기 때문에 한정되어있고, 남이 먼저 써버린 후 자신도
그것을 쓰면 조금 쪽팔리기 때문에 새로운 패러다임에 적응한 뮤지션들은 더이상 방탕한 생활을 하지 않고, 남들이 찾지 못한 새롭고
희귀한 LP를 찾기 위해 근면한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음악을 창작하는데 있어 이전과는 다른 태도를 의미하는데,
그것은 음악 자체에 대한 깊은 애정이다.

사설이 길었는데, 사실 위의 내용은 결코 사설이 아니다. 이 모든것을
에반게리온의 비밀조직 nerv처럼 dj shadow 홀로 조작했다고 친구에게 들려주어도 욕먹을 정도의 큰 과장은 아닐것이다.
dj shadow는 한명의 아티스트이기 이전에 하나의 커다란 현상이다. 그의 등장은 많은 뮤지션들이 DJ 뒤에 붙일 멋진 이름을
고심하게 만들었고, Technics사와 Akai사의 직원증원과 Gibson과 Fender사의 정리해고를 조장했으며, 회현상가의
악덕 엘피가게 주인 아저씨의 얼굴에 탐욕스러운 웃음을 짓게 했으며, ‘개나 소나 MPC, 돼지나 말이나 DJ’라는 말을
유행시켰다. 심지어는 beastie boys 팬클럽조차 생기지 못한 열악한 환경의 나우누리에 국내 최초의 dj shadow의
팬클럽 ‘vinyl junkies(go fndjsd)’가 생기게까지 했다. 이 모든 현상들은 dj shadow effect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아마 당신이 사회학과나 경제학과 학생이라면 이 제목으로 레포트를 쓴다면 분명 A+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담당교수가 올드락 열혈팬만 아니라면 말이다. 여기서 피쳐글의 수순에 따라 그의 발자취를 뒤따라가 보기로 하자.
dj
shadow의 본명은 josh davis. 재미없게도 1973년 샌프란시스코 근교의 hayward라는 곳의 평범한 중산층집안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그의 인생은 풋볼을 즐기고 치어리더소녀와 사귀는 중산층 백인의 삶과는 분명 다른 익사이팅한것이었다. 주위의
아해들이 다 기타, 베이스 하나씩 집고 동네 차고에서 kiss를 커버하고 있을 시절에, 그는 grandmaster flash의
‘message’를 듣고 당시 할렘의 껄렁뱅이 흑인들이나 듣던 힙합에 경도되었다. 그리고 84년, 턴테이블을 구입하고 샘
레이미가 그러했던것처럼 소장하고있던 마블코믹스를 팔아 LP를 구입하면서 방안에 틀어박혀 집에 있던 라디오와 더블 카세트 데크를
이용, 창조적인 실험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한 문헌에 따르면 dj shadow는 잡지에서 전혀 다른 이미지들을 잘라 붙이는 일명
꼴라주를 즐겨했다고 하는데, 아마 이런 성향은 그의 실험에도 큰 영향을 미쳤을거라 짐작된다. dj shadow의 그 시절을
회상하는 멘트를 들어보도자. “기계에 이상이 있었기 때문에 레코드와 테입에서 나오는 음을 동시에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한 테이프를 다른 테입에 녹음할 수 있었는데, 한 테이프에 비트를 깔고, 그 비트를 다른 테이프에 덮어씌우면서, 내
턴테이블로 스크래치를 했어요. 그리고 매주 용돈을 받으면 레코드가게로 달려가 4개의 싱글LP를 샀는데, 그것은 최고의
추억입니다!” 87년부터 클럽에서 디제잉을 하며 내공을 쌓던 그는 대학에 진학한 뒤 대학라디오프로그램을 통해 몇몇 B-Boy를
만나게 된다. 그들이 바로 지금의 quannum 크루 – latyrx와 blackalicious다. 그 후 그는 4트랙 레코더를
이용 ‘hip-hop reconstruction from the ground up’을 발표하는데 이 곡은 1991년 6월
source사에서 주관하는 ‘unsigned hype’ 컨테스트에서 우승을 하고 그 작업은 hollywood의 힙합레이블
hollywood basic의 dave ‘funken’ klein의 귀에까지 들어가 곧 hollywood basic과 계약을
하기에 이른다. 그 후 dj shadow는 91-92년동안 적은 양의 작업물을 발표하는데 이 작업물중 ‘the
legitimate mix’이 영국에 살던 당시엔 아무도 신경쓰지 않던 mo’wax 레이블의 오너 james lavelle에게
큰 인상을 남긴다. 그는 곧 dj shadow와의 만남을 추진했는데 그 의지는 (만약 그런게 존재한다면) 신의 축복속에 관철되고
말았다. 당시 dj shadow는 big beat, profile, tommy boy, wild pitch와 같은 미국의
전형적인 ‘랩’레이블에서 데모테입을 제작했는데, 당시 레이블 매니저의 반응은 다음과 같았다. “비트란 음악에 있어서 중요한
일종의 언어다, 하지만 니는 그저 사람들이 듣기 편하게 노래를 살릴 수 있게만 하면 되는기다” 기존의 음악계에 염증을 느끼던
그들은 아마도 만나는 순간 도원결의하던 시절의 유비, 관우, 장비가 그랬던것처럼 서로에게 필요충분조건이 될거라는 깊은 예감을
하고, 기존의 음악씬을 재편해야겠다는 강한 충동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들은 서수남 & 하청일 이후 최고의
콤비가 되었고 그후의 전개는 당신이 이미 알고 있는 그것과 같다. ‘in/flux’,'what does your soul
look like’(이곡은 브리티쉬 인디차트의 정상을 차지하기도 한다.) 외 몇장의 싱글과 EP를 발표, 96년 정규앨범
‘endtroducing’ 발표. 그리고…

‘endtroducing’
은 기존의 모든 룰을 바꾸어놓았다. 필자는 이 사실을 우에에에의 두번째 ‘에’를 걸고 장담하는 바이다. 여기서 MDM 2월호
reader’s page에 실린 나우누리 디제이쉐도우 팬클럽 운영진 김민씨의 고백을 들어보자. “난 endtorudcing을
듣고 쉐도우가 미친놈이라 생각했다. 대체 어떻게 이런걸 음반으로 낼 생각을 할 수 있었단 말인가.”100% 샘플링. jazz,
funk, soul, psychedelic rock, ambient, techno 를 넘나드는 신디크로프드의 넓적다리만한
스케입의 사운드. 그건 일종의 전복, 쿠데타, 아니 혁명이었다. 그리고… 사실 이 음반은 그가 afrika
bambaataa, marley marl, grandmaster flash 등 올드스쿨힙합 – 디제잉이 중심이되었던 순수한 힙합
시대의 선지자들에 대한 진심어린 존경과 함께 “내가 하고 있는것은 단지 힙합일 뿐이다’라고 증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음악씬의
무지한 권력계층인 평론가들에 의해 당시 페스트균처럼 창궐하던 trip-hop이라는 카테고리의 첨병처럼 인식되어지곤 했다. 하지만
trip-hop이라는 단어가 백신의 발명으로 멸종해버린 페스트균처럼 사어가 되어린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이 음반은 당시
베이에리어를 근거지로 조금씩 싹트고 있던 turntablism 더 나아가서는 underground hiphop씬을 수면위로
부상시키는 촉매제로 작용했다고 보는게 옳다. 물론 underground hiphop도역시 AIDS처럼 근래들어 유행하고있는
트렌디워드이기는 하지만, 당신이 역동의 세월을 지나온 흑인음악과, 그것의 위대함에 무릎꿇고 무한한 존경심을 표하며 온건한
모습으로 그것을 지키려는 자들의 깊은 애정을 이해한다면 단지 위 단어가 급조된 유행어만은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본작의 ‘why hiphop sucks in ’96′에서의 답변은 시사하는 바가 큰데, 그의 pure hiphop에 대한 애정은
그가 조직한 solsides, 현재는 quannum 크루의 작업물에서도 역력히 드러난다. 이에 대해서는 페이지를 넘겨 그것에
관한 기사를 읽어보세요. 그 후 악덕기업 ebay에 수수료까지 지불해가며 비싼값으로 그의 거의 한정반으로 발매된 초기 레어작들을
구입했을 이들에게는 큰 허탈함을, 그러지 못한 대부분의 팬들에게는 큰 기쁨을, dj shadow라는 네임밸류에 크게 힘입고 있던
mo’wax 레이블에게는 큰 돈을 쥐어주었을 그의 초기작품집 ‘preemptive strike’와 afrika
bambaataa의 ‘death mix’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그의 태도 혹은 취향을 다시 한번 선언함과 동시에 언제나 2%
부족한 목마른 팬들에게 선사하는 귀여운 서비스 ‘camel bobsled race (q-bert mix)’를 이후로 온전히 그의
이름만 박힌 앨범은 한동안 발매되지 않았다.


후 그는 자신과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는 이들과 파트너쉽을 다지는데 주력한다. 그 중 첫번째는 James lavelle의
프로젝트 UNKLE. 아마 많은 분들이 channel V와 같은 음악채널에서 싱글커트되었던 ‘rabbit in your
headlights’의 MV에서 앙상한 몰골의 주인공이 차에 치이는 장면을 한국 여고생이 아담을 보는 횟수만큼이나 많이
보았을것이라 생각하는데. 그건 이 앨범이 그만큼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걸로 해석해도 좋을 것이다. 사실 UNKLE은 시작부터 큰
기대를 불러 일으켰는데, 그 이유는 dj shadow와 james lavelle의 프로젝트라는 점도 있지만, 떡보다 남자라는
일본 속담처럼 게스트 진용이 화려했기 때문이다. UNKLE에 참여한 게스트는 여러각도에서 분류가 가능하다, 과거의 스타 -
kool g. rap, 현재의 스타- thom yorke, richard ashcroft, 미래의 스타 – badly drown
boy. 혹은 영국의 주류음악 – british rock, 미국의 주류음악 – hiphop. 이렇듯 당시의 대중 음악계를
게걸스럽게도 통째로 집어삼키려했던 프로젝트 UNKlE.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작의 미덕은 단지 그것에 막연히 기대지 않은 채
자신들의 스타일을 지키며 적절한 컨트를를 이룬 것이다. 그들은 사람들의 높은 기대치에 충분히 만족할만한 음악으로 보답했다.
(수퍼프로젝트에 있어서 사람들의 기대치를 배신하기가 얼마나 쉬운가에 대한 적절한 예로는 Gorillaz가 있다.) 대단한 성공을
거둔 UNKLE 이후 그는 그 성공을 지키기 위한 노력보다는 꾸준히 새로운 실험을 하는데 몰두하는데, 그 결실이 이제는 전설이
되버린 cut chemist와의 함께 작업한 ‘brainfreeze’와 ‘product placement’다. cut
chemist와 dj shadow는 유사한 점이 많은데, 둘 다 45회전 rare funk/soul single의 광적인
컬렉터라는 점. 베이에리어를 주축으로 한 underground hiphop 씬의 중심이 되는 백인 DJ라는 점. 그리고 서로
모르게 Double Dee & Steinski의 ‘lession 1,2,3′를 바탕으로 ‘lession 4′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그 후 그들은 각자 ‘lession 4′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함께 ‘lession 5′를 만들기로 약속했다고
하나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위 두 음반을 통해 함께 작업하기에 이른다. 그것이 ‘brainfreeze’와 ‘product
placement’는 라이브를 바탕으로 한 dj mix 음반이다.

음반이 나오게 된 배경에는 dj shdow가 ‘endtroducing’을 발매한 직후, 그것이 시퀀싱 위주로 이루어진 음반이기
때문에 그의 turntablist로서의 자질을 의심하는 평가가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dj shadow는 그런
의심에 대해 이 두장의 음반으로 명쾌하게 대답한다. ‘brainfreeze’는 그 이름도 저명한 futureprimitive
soundsession의 리허설에서 녹음된것이다. 본래 그렇게 만들려고 했던건지, 아니면 정식 음반 판매를 고려하지 않을 정도로
다소 급조된 프로젝트였기 때문인지, 현재 turntablism 씬에서 엿 볼 수 있는 화려한 스킬이나 긴밀한 구조적 미학은
엿보기 힘들다. 하지만 6,70년대 45회전 soul/funk single에 대한 두사람의 깊은 애정과 컬렉터로서의 진득한
면모를 맛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가치는 충분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brainfreeze’가 발매된지 2년 후
그들은 ‘product placement’로 다시 뭉친다. 그 음반은 모든면에서 ‘brainfreeze’때보다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룬 음반이었는데, 그것은 그들이 현재진행형 DJ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단서가 될 것이다. 그들의 증언에 따르면 30여분정도 되는
두개의 믹스트랙에 총 129개의 funk, soul, krautrock, movie dialogue 45회전 싱글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잠시 눈을 감고 상상해보라, 단 두사람이 60분동안 1분에 2개 정도의 각기 다른 음원들을 실시간으로 믹스하는 광경을.
많은이들이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이 광경을 그들은 음반을 통해 그리고 총 7회로 진행된 product placement tour를
통해 완벽히 재현해낸 것이다. ‘brainfreeze’와 ‘product placement’는 거장 turntablist 두명이
뭉쳤다는 사실과 음악 내적으로도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지만, 음악 외적으로도 큰 화제를 모았는데, 이 음반들이 지극히 인디적인
방법으로 소량 제작되었고, 그것들은 투어를 통해서만 판매되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그들이 뮤직 비지니스와 프레스의
스포트라이트에서 한걸음 물러서 음악에만 집중하고 싶다는 의지의 발현으로 보인다. 실제로 dj shadow는 최근 인터뷰에서
프레스의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와 음반의 프로모션을 위해 거대한 관중이 응집한 페스티발에서 디제잉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런면에서 이들의 작업은 분명 의미있는 것이기는 하나, 전세계에 널리 분포되어있는 그들의 팬 혹은
wannabe DJ들에겐, 특히 그 모든 혜택에서 항상 변방에 있을 수 밖에 없는 한국의 팬 입장에서는 조금 불만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누군가 불만을 품고 고의로 ‘이 모든것은 ebay가 마이크로칩으로 그들을 조종한 결과다’ 라는 음모론을 펼쳐도
납득할 수 없는 일만은 아닐 것이다.

그외에도 quannum 패거리를 이끌고, handsomeboy modelng
school과 ‘dark days ost’에 참여하면서 항상 뮤직씬의 안과 밖을 드나들며 바쁘게 지내온 그이지만, 항상 그의
팬들은 그의 솔로 음반을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의 운명을 바꾼 ‘endtroudcing’가 발매된지 6년만에,
말장난 좀 치자면 1세기가 지난후, 마감기간을 한참 넘긴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선 내일 드디어 ‘private press’라
명명된 그의 두번째 정규앨범이 발매된다.


시점에서 ‘private’라는 단어는 어딘가 의미심장해 보인다. 그러고보니 얼마전에 발매되었던 곤충소년윤키의 ‘mexican
vacation’의 첫번째곡과 마지막 곡에서도 ‘private’이라는 단어가 쓰였고 그 단어는 그 음반의 성격에 비추어 그
음반을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단어였다. e모씨의 표현을 빌어 ‘모던락을 대학원 박사과정화 시키려는 국적없는평론회’라면 이는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서구사회를 중심으로 급속히 진행된 탈-집단주의와 개인적 이념과 사상을 존중하는 사조의 발달이
어쩌구절씨구하겠지만, 필자는 이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고, 다만 분명한건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최근 들어 음악이라는건 대단히
개인적인 경험으로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우리 시대에 anthem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해도 좋을
것이다. 우리는 kill rock star라는 말조차 무색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cut & paste라는
방법론은 얼마나 개인적인 작업인가. 그것은 기존에 존재하던 음악을 개인적인 취향과 우연적, 개인적 경험을 통해 수집하고, 그것을
침실이라는 개인적 공간에서, 개인적인 감정과 의미를 담아내는 것이 아닌가. 아울러 본 타이틀은 분명 소포모어 징크스라는 수식을
덧붙이며 그의 작업을 평가하려는 필자와 같은 이들에 대한 항변이자, 그가 뮤직비지니스의 중심에서, 그리고 투어에서 느낀 불편함과
공포를 드러낸게 아닌가 싶은데, 실제로 dj shadow는 본 작업에 대한 영감의 대부분을 99년에 행했던 투어에서 얻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본작은 intro는 ’451 commercial avenue, apartment k, richmond,
california, september 9..’를 읊는 여성의 나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이것은 진정한 의미의 최후의 private
press인데, 실제로 30-50년대 사이 미국에선 다른이에게 보낼 편지를 컷팅해주는 샵이 존재했다고 한고 이것은 그곳에서
컷팅된 엘피라고 한다. 이 시점에서 우에에에의 세번째 ‘에’를 걸어야 할때가 왔다. 이 음반을 듣는 최고의 방법은 단지 이
음반을 최대한 개인적으로 듣는 것이다. 당신이 프로듀서 지망생이라면 ‘monosylabik’, ”와 같은 곡에서의 비트메이킹과
‘blood on the motoway’와 같은 곡에서의 샘플 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고, (실제로 국내의 한 프로듀서의
고백에 의하면 이 음반은 테크닉적 측면에서 여태껏 나온 것중 최고라고 한다) 당신이 디제이 지망생이라면 ‘ (Shadow,
Cutchemist, Numark playing live’를 들으며 스킬을 연구해보는 게 좋을 것이다. 혹은 당신이 단지 그냥
평범한 음악팬이라면 애인에게 버림받은 날 ‘the 6 day war’를 들으면 절망적인 무드를 즐기는것도 나쁘진 않은 선택이다.
이도저도 아니라면 그냥 이게 dj shadow의 음악이구나 하면서 그날 술자리에서의 화제로 삼아도 좋다. 그가 ‘you
can’t go home again’에서 가을저녁노을의 고즈넉한 분위기의 simon & garfunkel의 ‘el
condo pasa’의 기타인트로를 댄스플로어를 위한 기묘한 분위기의 주변음으로 인용한것처럼, 당신도 최대한 개인적인 마인드로
이 음반을 받아들이고 재해석하고 즐겨라. 어쩌면 dj shadow는 ‘endtroducing’의 음악 만들기의 혁명 이후,
‘private press’에서 음악 듣기의 혁명을 꾀하고 있는건지도 모르겠다.

날로 먹는 페이지 – dj shadow에 대한 사소한 궁금중들.
Q:j.davis가 찍힌 앨범을 가지고 있는데 dj shadow의 음반인가?
A:그 음반의 j.davis는 jonathan davis이다.
Q:’endtroducing’의 커버에 나온 사람은 누구인가.
A:뒷면은 ABB 레코드의 설립자 Beni B이고 앞면 왼쪽은 chief xcel, 오른쪽은 lyrics born이다.
Q:BSWAGOS와 WDYSLL은 무엇인가.
A:길게 타이핑하는 사람들이 지어낸 줄임말이다.
BSWAGOS – building steam with a grain of salt
WDYSLL – what does your soul look like?
Q:dj shadow가 nirvana의 곡을 샘플링했다고 들었는데.
A:맞다. 하지만 그것은 미국의 그런지 밴드 nirvana가 아니라 70년대 영국의 nirvana다.

* 2004년도 1월 23일에 ‘사랑과 웃음의 밤’에 적은 글입니다. 그리고 그전에는 2002년도 MDM 7월호에 개제되었습니다. 벌써 5년전의 글이군요. 예전에 썼던 글을 이곳에 다시 옮기는 이유는 당연히 그 이후로 새로운 글을 별로 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블로그를 이사하며 적어도 1일1포스트의 원칙을 세웠는데 그간 갖고 있던 컨텐츠가 다 떨어지면 새로운 글을 쓰게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 시한이 이제 얼마 남지않았습니다. 으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