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심지어 서울 내에서 강을 건너는 일도 일년에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지만 (그리고 이는 내가 왜 성공하지 못하는 지에 관한 좋은 핑계거리가 되어 준다.) 일년에 두어번 정도 내 의지와 관계 없이 서울 밖 지역으로 나가야 할 일이 생긴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교통비를 주어 내 좁은 방에 들이는 건 통장잔고를 줄게 하지만 내가 그 사람들에게 교통비와 페이를 받고 내려가는 건 통장잔고를 (미약하게나마) 늘게 하니까. 그리하여 작년엔 차지은씨의 제안으로 제천 영화제 시네마 파라디소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올해는 먼지양의 섭외로 11월 18일부터 19일까지 진주에 내려가 경상대 방송국 영상제에 참여했다. 참고로 나는 경상대 신문에 칼럼을 기고 중이기도 하니, 경상대 학생들은 자신들이 내는 등록금이 한 이름없는 프리랜서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며 내가 경상대를 내 모교보다 더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아무튼, 서울 밖의 지역에 나가는 건 극히 드문 일이고 이 날의 경험을 통해 올해 내 외출 중 서울 밖 지역 할당량은 다 채운 듯 해 그를 기념하고자 진주에서 있었던 일들을 포스팅한다. 그렇게 2009년도 가는거지.
진주고속버스터미널 앞. 진주의 마스코트 논개 캐릭터가 붙어 있는 개나리 색의 택시가 지나다니고 있다. 논개 노래의 가사를 떠올리며 저 해맑게 웃고 있는 논개 캐릭터를 바라 보면 뭐랄까, 자신의 의지완 관계 없는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가고 이렇게 돌아오는거지.

내가 참가한 행사의 타이틀은 위와 같다. ‘열정’, ‘향기’, ‘탐하라’. 이 얼마나 대학생의 풋풋함이 잘 드러나는 단어들인가. 참고로 미국 대학교 방송국을 중심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컬리지 록의 가사는 대부분 냉소적이고 염세적이다. 우리나라 대학 생활도 날로 힘들어지고 있으니 곧 한국에서도 한국의 컬리지 록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식사 시간이 지난 후 도착해 약속했던 한우를 얻어 먹진 못하고 대신 한우 햄이 들어있는 샌드위치를 대접받았다. 참고로 콜바사르는 히브리어 Kol-Wbasar로 동유럽 슬라브 국가들의 귀족이 즐겨먹었다는 고급 수제육제품의 어원이라고 한다. 어원과 관계 없이 먹는 순간 위벽을 모두 녹여버릴 것 같은 이름이다.

상대적으로 홍보가 덜 되어 충분히 당첨될 가능성 있다 생각해 매일 응모했던 대한민국 검색대회. 알고보니 전국 대학교에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이러니 내가 당첨이 안되지. (결국 나는 모든 회차에 참여하는 이에게 주는 개근상 따위에 당첨, 내 사이즈완 맞지도 않는 구글 티셔츠를 받게 된다.)

경상대는 맥빠? ‘방송신문사’ 관련 사무실만 들러서였겠지만 스티브 잡스가 흐뭇해 할 정도로 가는 곳마다 아무렇지 않게 맥이 널려 있었다. 참고로 이 맥은 내가 이 학교에서 본 맥 중 가장 안 좋은 맥이다.

드디어 리허설을 위해 입장한 행사장에 좌석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절망중. 출장 디제잉을 다니며 느끼는건데 한국인은 차려준 좌석에 대해선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참 예의바른 민족이다. 이러한 환경은 결과적으로 친대중적으로 짜여진 plan-a mixset 대신 내 취향대로 짠 plan-b mixset을 선택하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

장비를 놓을만한 마땅한 테이블이 없어 학장님만 사용한다는 교단 위에 장비를 셋팅했다. 참고로 빅뱅 콘서트에서 쥐드래곤도 교단 위에서 디제잉을했다고 한다. (그나저나 내 블로그에 ‘쥐드래곤 발기’로 검색해 들어오는 녀석들은 대체 어떤 녀석들이냐.)

최종 셋팅 샷. 이 날의 공연은 내가 15분간 플레이하고 5분간 경상대 비보이팀 토네이도와 협연 후 나머지 10분동안 토네이도가 자신들이 준비한 음악에 맞춰 공연을 펼치는 것으로 구성되었다. 공연 전 프리스타일에 쓰일 음악을 토네이도 단장과 같이 골랐는데 의외로 국내 블로그에선 ‘발로 만든 음악’이라는 평을 받고 있는 major lazer의 ‘pon de floor’에 반응을 해 조금 놀랐다. 아아, 몸으로 음악을 받아 들인다는 건 얼마나 정직한 일인가. 최종적으로 diplo의 ‘wassup wassup’, arabian prince의 ‘it ain’t tough’ 그리고 kid cudi의 ‘day n night (crookers remix)’으로 프리스타일 셋을 짰다. 내 단독 공연에선 정확히 내가 예상한 반응이 나왔고 토네이도가 등장한 후론 비교적 열렬한 호응 속에 공연이 진행됐다. 공연이 끝난 후 토네이도와 인사를 나누며 비걸들에게 ‘멋있어요’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아쉽게도 그들의 뒤풀이 자리는 내 뒤풀이 자리와 달랐다. 다시 한번 그 날 멋진 공연 보여준 토네이도에게 감사의 말을, 비걸들에겐 XOXO를 전한다.
경상대학교가 살아야 나도 산다. 다음 학기에도 칼럼의 연재를 요청해 준 박윤정 편집장에게도 역시 XOXO를.

국내 최초로 출시된 ‘무학’사의 16.9도 소주 좋은데이. 출시 초기에는 시원을 제조하는 ‘대선’의 방해로 제대로 유통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에 아이폰이 들어 오기가 괜히 힘들었던 게 아니다.

19.9도 소주 화이트. 문득 경상도 지방의 수퍼에서 화이트를 달라고 하면 생리대를 줘야할지 소주를 줘야할지 헷갈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뒤풀이 자리는 영상제를 준비한 스탭들과 같이 했는데 결과적으로 별로 즐거운 자리는 아니었다. 대부분의 뒤풀이 자리는 돈을 내지 않고 고기를 양껏 먹을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지만 그와 동시에 윗사람이 주도하는 분위기를 따라가야 한다는 더 큰 단점을 포함한다. 나는 이방인이라는 큰 어드밴티지 덕에 회식의 중반까지 장점만을 취하고 있었다. 허나 한 이름 이상한 이가 불필요하게 나를 끌어 들여결국 단점까지 취하게 된데가 그 이름 이상한 이가 적절하지 못한 판단내에서 유대감을 쌓기 위해 뱉은 멘트들이 내 심기를 불편하게 해 되려 단점을 극대화시키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가명을 쓰는 경우를 제외하고 (예:래퍼, 블로거) 이름 이상한 사람은 컴플렉스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내 편견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 자리였다. 참고로 그 이름 이상한 이는 다음날 부적절한 멘트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루게 된다. 빅뱅이론의 라지 말처럼 카르마는 뉴턴의 과학적 공식이고 그 이름 이상한 이는 두 얼굴의 썅년이었다.

택시를 타고 가장 가까운 모텔에 데려 달라고 했더니 이 모텔 앞에 내려줬다. 참고로 이 모텔은 2007년 진주를 방문했을 때도 묵었던 모텔로 아저씨가 방을 착각해 내게 모텔 침대 위에 발가 벗고 누워 있는 두 남녀의 모습을 목격하게 만들었던 곳이다. (그리고 나는 그 사이를 지나 원래 목적대로 냉장고에서 박카스 유사 제품을 꺼내왔다.) 꼭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이 모텔에 묵기로 했다. 모텔비는 만원이 오르고 그 때 함께 묵었던 이는 사라져 즉, 그때보다 모텔비를 두 배 이상 물게 되어 조금 억울했는데 안에서 잡히는 mylgnet의 비밀번호가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달라 더 억울했다. 구글 검색대회에 참가해야 하는데..

모텔에 별로 가본 적은 없지만 왜 모텔의 인테리어와 조명은 다 이 모양인걸까. 멀홀랜드 드라이브와 같은 꿈을 꾸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러고보니 재작년엔 이곳에서 국내에선 개봉도 하지 않은 asia argento의 ‘스칼렛 디바’를 티비에서 우연히 봤던 기억이 난다.

진주에 내려 와 가장 좋았던 점 중 하나는 넓게 펼쳐진 수평선을 자주 볼 수 있었다는 점. 확실히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제의 썅년을 용서해줄 수도 있을 것처럼 마음이 너그러워진다. (물론 그렇다고 용서하지는 않았다.) 서울에서 지금처럼 개발이 계속된다면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수평선이라는 게 무엇인지 그림이나 사진을 통해 설명해 주어야 할 것이고 아이들은 나처럼 좁은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경계라곤 찾아 볼 수 없는 어머니의 눈과 아이의 해맑은 표정이 진주는 너그러운 마음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곳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너그러운 마음을 가진 가족을 위해 모두 안전하기를.

먼지네 집 앞 풍경. 재작년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없었는데 전국 체전을 앞두고 스타디움을 짓고 있다고 한다. 커다란 거미 한마리가 언덕 위에 올라와 있는 듯 하다. 먼지한테 저거 생겨서 집값 좀 오를 것 같냐 물었으나 대답을 듣지는 못했다.

먼지네 집 앞 버스 정류장. 이 곳에서 버스를 계속 기다리다 보면 고스트 월드의 이니드처럼 다른 세상으로 떠날 수 있는걸까. 멈추는 버스가 있을지 기다려 보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만원 오른 모텔비의 부담이 너무 컸고 구글 검색대회 참가기간은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먼지양이 대접한 한우. 고기도 먹어 본 놈이 먹는다고 제대로 굽는 법을 몰라 중간에 바싹 익히고 조금 태우기도 하고 그랬다. 고기덩어리가 되어버린 한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까. 하필이면 서울에서 돌아오는 길에 탄 지하철에 ‘한우를 먹을 자격? 한우를 구울 줄 아는 분. 바짝 구우면 질겨 못 먹습니다.’ 따위의 광고판이 붙어 있어 빈정이 좀 상했다. 아무튼 이렇게 한우도 먹을 줄 모르고 좁은 마음을 가진 서울 촌놈의 진주 기행은 슬슬 마무리되고 있었다. 다른 곳을 더 다녀볼까도 생각했지만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나는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다 장비를 실은 가방은 무겁고 거추장스러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구글 검색대회에 참가해야 했다. (그 때 결국 개근상이나 타게 될 줄 알았더라면.)

오는 길엔 하인리히 뵐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를 읽었다. 많은 이들이 유시민의 추천으로 이 책을 읽게 되었다고 하는데 나는 유시민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 관심 없고. 옮긴이에 적혀 있는 김연수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소설가 김연수인 줄 알고 구입했다. 생각해보니 김연수가 독일 작가의, 그것도 민음사
책을 번역할리가 없는데. 유시민의 추천으로 읽게 된 것보다 더 바보같은 이유다. 하지만 이유와 관계 없이 책은 꽤 좋았다. 내가 갖지 못한 모든 것을 가진 카타리나가 부디 행복해졌기를 바란다.

긴 여행의 꽃은 역시 호두과자지,라는 마음으로 돌아오는 길에 휴게소에 들러 호두과자를 사 먹었다. 그렇게 가는거지. 진주기행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