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2007년에 가장 후회하는 일 중 하나는 데쓰 프루프(death proof)를 극장에서 보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2008년에 가장 자랑스러워할만한 일은 데쓰 프루프와 짝패 영화인 플래닛 테러(planet terror)를 (한국의) 누구보다 빨리 극장에서 보았다는 것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사회를 기획한 BPF 팀에게 깊은 감사를 전한다.
영화 시작 전 상영되는 훼이크 영화(였으나 실제 영화를 보고 싶다는 밥 웨인스타인의 바람 덕에 dvd용 영화로 제작이 결정된) machete의 예고편 마지막에는 x-rated 등급 표시가 등장한다. 그건 로버트 로드리게즈가 우리에게 보내는 일종의 선언이었다. 이 영화를 방해할 건 아무것도 없다고. 이 영화는 그 어떤 경계도 두려움없이 가볍게 뛰어넘을 거라고. 실제로 플래닛 테러는 그의 선언을 눈치채지 못한 이에게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질주한다. 우리가 가볍게 내뱉은 농담인 뇌가 없다는 말은 진담이 되고 쿠엔틴 타란티노의 사타구니는 폐기물처리장의 타이어처럼 녹아 발밑으로 뚝 뚝 떨어진다. 세라복을 입은 이즈미는 기관총을 들었지만, 핫팬츠를 입은 로즈 맥고완은 잘려진 다리에 기관총을 박았으며, 텍사스의 트럭 운전사 프레디 로드리게즈는 닌자였(던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영화는 좀비 영화이며 (거의)지구종말의 영화이기도 하다. 어떤가,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신체와 총기와 지역과 전통과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신나 하는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표정이 그려지지 않는가.
machete trailer
사실 이 영화에 대한 평은 크게 의미가 없다. 환호하거나 천대하거나. 좀비영화의 매니아가 아니라는 유일한 이유로 별 3개의 평점을 준 시카고 선타임즈의 리뷰처럼. 그러니까 이건 태도에 관한 영화다. 다리에 기관총을 단 로즈맥고완이 유탄을 발사해 하늘로 날아올라 360도 회전을 하며 좀비를 기관총으로 쏴 죽이는 장면에 대한 얘기를 듣고 끝내준다는 표정을 짓는 소수의 사람들은 환호할 것이고, 그게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지 않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천대할 것이다. 대부분의 b급 영화의 운명이 그러한 것처럼. 그리고 이 영화는 여성이 성장하고 승리하는 영화다. 이는 데쓰 프루프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사실 여기에 큰 의미를 부여할 생각은 없다. 다만 동시상영 영화의 틀과 기존 장르영화의 클리셰를 그대로 가져온 어떠한 의미에서 지극히 고전적인 이 영화에서 여성이 승리한다는 사실은 큰 전복의 쾌감으로 선사한다. 당신이 치녀물을 좋아한다면 분명 이 영화도 좋아하게 될 것이다. 다만 다리 페티쉬가 있다면 보지 않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이 섹시한 다리를 영화가 시작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영영 볼 수 없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