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지. 말이에요. 그 질문의 두께는 시간이 지날수록 브리태니카 백과사전만큼이나 두꺼워지지만, 브리태니카 백과사전처럼 명쾌한
답변을 주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사랑에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사랑과 기술이라는 단어는 결코 어울리지 않습니다. 로맨스
보수주의자가 들으면 펄쩍 뛸 단어의 조합이지요. 하지만 모든 일에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그것을 더욱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요.
그래서 사랑에도 기술이 필요합니다. 다른 무엇보다 상대를 더 많이 사랑하기 위해서 말이지요.
제가 근 10년 넘게
사랑에 빠져있는 상대는 바로 음악입니다. 저는 그간 제가 사랑하는 음악을 알기 위해 무수한 노력을 해왔습니다. 때로는 밥을
굶기도 했고, 공과금을 못내기도 했으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했습니다. 어쩔때는 실연을 당하기도 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덕분에 연애하게 된 적은 많군요. 좋은 음악을 많이 알고 있는 남자는 여자들의 가장 좋은 친구니까요. 흠흠.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은 쉽게 자신의 비밀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오히려
애간장만 태우게 마련이지요. 하지만 애간장의 시간을 통해 저는 어떻게 하면 음악을 조금이나마 더 많이 사랑할 수 있는지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 사랑의 기술이 생긴거지요. 돌아서 갈 길을 바로 갈 수 있는 그런 기술이요.
제게 생긴 가장
큰 기술은 음악을 들을때마다 그 음악의 장점을 캐취하고 그것에 집중하는 겁니다. 메타 태그를 만들어 두는 것이지요.이를테면 mansfield를 들을때면 리듬다이에 주목하고, handsomeboy technique을 들을때면 샘플링의 텍스쳐가
어떻게 겹겹이 쌓아지는 가에 주목합니다. 그 음악에서 가치를 발견하고 그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지요. 에레나의 음반이 발매되기 전
제가 만든 메타 태그는 스타일리쉬한 프로듀서(espionne)와 훌륭한 싱어송라이터(elena)가 어떻게 조우하는가였습니다. 하지만
음반을 받아 듣고서야 제가 너무 성급히 태깅을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 음반은 그렇게 단순하게 들을만한 음반이
아니었어요. 결코 사랑의 기술로는 들을 수 있는, 바로 갈 수 있는 그런 음반이 아니라고요.
에레나가 늦은 여름 발표한 이 음반의 스펙트럼은
다양하지만 결코 음반이 만든 바운더리 밖으로 밉게 삐져나오지 않습니다. 플룻과 나이론기타 연주까지 선보이는 espionne의 다재다능하고 매끈한
올라운드-프로듀싱에서부터 바비정이 만든 스트레이트한 기타팝, fairbrother(이 얼마나 반가운 이름이란 말입니까)의 과하지
않은 레게튠까지. 이 모든 것들이 에레나의 큐트하면서도 감미롭고 때로는 쓸쓸한 송라이팅을 적당한 선에서 보조해주고 있습니다.
가사는 어떻구요. 에레나, 방영남, 정미환, 바비정이 써내려간 가사는 지나간 여름의 추억과 회한을 나즈막하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을 곱게 포장하고 있는 박의령의 사진과 한선명의 일러스트는 또 어떻습니까. 그 모든 것들이 모여 만들어낸 감성은 결코
사랑의 기술같은 걸로는 사랑할 수 없습니다.
늦여름 발매되는 이 음반은 지나간 여름을 추억하며 보낸 수줍은
편지입니다. 그 편지에 담겨 있는 내용은 사람들이 모두 떠난 바닷가에 단 둘이 남아있는 커플의 샌달같은 느낌이랄까요.
개인적으로는 지나간 여름 하면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음악을 틀어놓고 아침의 부산스러운 흔적을 하나하나 정리하고 방에 혼자
남겨졌을 때의 감정이 떠오릅니다. 덤덤하게 세계의 끝을 바라보는 듯한 그런 감정 말이예요.
- 에레나 공식홈페이지
- 싸이월드 팬클럽 ‘say hello to elena’
* 이 글은 2006년 8월 28일, 에레나의 음반이 발매되기 하루 전 ‘사랑과 웃음의 밤’에 적은 글입니다. 일년이 지난 지금 에레나는 몇차례의 공연과 sbs 인기가요에 출연했으며, 올 가을 일본 유학을 떠날 예정입니다. 글의 내용이 일부 바뀌었는데 어디어디가 바뀌었는지 모두 알아맞추시는 분께는 에레나의 음반을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참여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 알고 있습니다. 후후.) 제가 예전에 찍은, 한 때 롤리팝 사운드의 에레나 소개 페이지의 공식 프로필 사진이었던, 사진이 있는데 이건 집에 가서 찾아 올리도록 하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