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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6월 10일 시위에서 처음 느낀 가장 큰 감정은 무력감이었다. 빌어먹게도 이명박의 의도는 적중했다. 이명박이 쌓아 올린 명박산성은 지금껏 내가 보아온 국정운영 중 (하필이면) 가장 기발한 것이었다. 중학교 소풍 때  항상 가던 남한산성을 오르기 직전 느꼈던 피로감이 떠올랐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이러한 상상력이 국가 주도하에 현실이 되는 광경을 볼 수 있는 나라 없을 것이다. 어느새 광화문은 헐리우드 스튜디오가 되었고 컨테이너박스는 블럭버스터에 등장하는 몬스터가 되었다. 내가 그 블럭버스터의 수퍼히어로였다면 좋았겠지만, 나는 언제 몬스터가 휘두른 팔에 무너진 건물더미에 깔려 죽을지 모르는 엑스트라에 불과했다. 나는 우리 앞에 굳건히 쌓인 컨테이너를 보며 나는 내가 시위에 나온 목적을 상기하기 전에 그 컨테이너를 결코 넘을 수 없을 것이라는 무력감에 먼저 사로잡혔다. 이 무력감은 촛불을 들고, 노래를 따라 부르고, 구호를 큰 소리로 외치는 와중에도 유령처럼 내 어깨 위에 달라 붙어 있었다. 갈 곳을 정하지 못한 채 이곳 저곳 사람들을 따라 걷다보니 어느새 다리가 아프고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다. 아마 무력감의 무게 때문이었을 것이다.

인디펜던트 영화가 블럭버스터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상상력이다. 전세계적으로 유래없는 블럭버스터급 상상력을 상대로 국민들은 인디펜던트 영화급 상상력으로 대응했다. (나중에 알아보니 이 인디펜던트 영화의 제작/투자는 민주노총이, 감독은 kyoko님이 하셨다고 한다.) 새벽 1시 경 내가 본 풍경은 내가 지금껏 보아왔던 시위의 풍경 중 가장 감동적이었던 것이었다. 시민들이 스티로폼을 나르더니 하나 둘 컨테이너 앞에 쌓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일련의 무리들이 일일히 스티로폼을 날랐지만 그 무리는 어느새 컨베어벨트가 되어 마치 고대 이집트에서 피라미드를 쌓는 것 처럼 스티로폼이 운반되었다. 내 뒤로는 삐에로가 풍선을 불어주고 있었고, 내 앞으로는 여중생들이 현 시국에 대한 격렬한 토론을 벌이고 있었으며, 벽에는 연신 쥐 그림과 이명박을 욕하는 레이저 태깅이 이어지고 있었다. 마치 초현실주의 영화속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았고, 그들 대부분이 그렇듯 무슨일이 일어나도 좋을 것 같다는 대책없는 낙관을 가지게 됐다.

하지만 그 후 내가 겪은 것은 초현실주의의 세계를 다시 한번 뒤튼 기묘한 것이었다. 관객의 기대를 배반하는 인디펜던트 영화의 결말처럼 상황은 반전되었다. 스티로폼이 쌓인 뒤 그 위에 누군가 올라 발언을 하기 시작했다. 이후 시민들은 ‘내려와’라고 외쳤다. 적어도 내가 현장에서 들은 ‘내려와’라는 외침은 중의적 의미를 가진 것이었다. 한 외침는 ‘비폭력’을 주장하는, 굳이 저 컨테이너 박스를 넘어 청와대로 진격할 필요가 있냐는 외침이었고, 다른 외침은 기껏 컨테이너 박스를 넘기 위해 스티로폼을 날라 컨테이너 박스 앞에 쌓았는데 결코 우리를 대변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단체가 올라와 그 자리를 차지했다고 생각하는 외침이었다. 각기 다른 주장이 같은 언어의 외피를 둘러싸고 스티로폼과 함께 공중 위를 붕붕 떠다니고 있었다. 이 후 빨간조끼를 입은 여자분이 단상위에 올라 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뭐라뭐라 했고 몇가지 정황을 통해 스티로폼을 통해 저 장벽을 넘을 의지는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나는 자리를 떴다.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다른 블로거분들이 해주셨으니 생략한다.)

근본적으로 우리가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뽑고, 총선에서 한나라당을 과반수 이상 뽑고, 광우병 시위에 나오는 것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했다는 점에서 동일한 일이다. 우리가 이명박을 뽑은 것은 아무런 비판적 접근 없이 달러가 눈에 그려진 코믹스 캐릭터처럼 경제라는 이미지에 현혹되었기 때문이었고, 총선에서 한나라당을 뽑은 건 부동산 카지노가 된 한국에서 자신 역시 뉴타운 개발이라는 빅팟을 터트리겠다는 욕망 때문이었다. 광우병 시위는 말할 것도 없이 광우병에 걸린 쇠고기 먹고 광우병에 걸려 죽고 싶지 않기 때문이고. 결과적으로 이 행위들은 모두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개인의 안전과 욕망을 위한 것이다. 지금껏 나는 이 얘기를 솔직히 조금 무서워서 그리고 내가 과연 그러한 말할 자격이 되는지 걱정스러워 하지 않았다. 고맙게도 이정환님이 이에 대한 얘기를 과감히 해주셨고 그에 빌붙어 발언한다다. 나는 많은 시민들이 진지하게 고민하고 학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행인건 이번 시위를 빌미로 적잖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 학습하기 시작했으며 그 학습을 전파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민하고 있는지에 대해선 개인적으론 확신할 수 없다. 앞으로 우리의 과제가 있다면 그 학습을 고민으로 이어가게 하는 것일 것이다. 그리고 그 고민의 종착역은 우리 스스로에 대한 반성이어야 할 것이다. 물론 촛불 하나 하나는 진심으로 위대하다. 하지만 그것이 그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려면 그것을 통해 바뀌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그 출발은 우리가 먼저 바뀌는 것이다.

나는 그 시간 그 자리에서 쌓아 올린 스티로폼을 타고 올라가 명박산성을 넘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자리에 있는 대부분의 시민들이 그에 반대한다면 넘지 않는게 옳다도 생각한다. 그것이 민주주의니까. 그것이 우리가 그들과 다른 점이니까. 하지만 나는 역시 나는 가는게 옳다고 생각을 버리지 못했고 그게 나만의 생각은 아니었던 것 같다. 결국 날이 밝아오고 일부 사람들은 스티로폼을 타고 명박산성 위로 올라갔다. 하지만 그 때는 ‘내려와’를 외치던 대부분의 시민들이 자리를 떠난 뒤였다. 반쪽짜리 승리인 것이다. 우리가 저 벽을 넘어설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는 승리를 위해 모였고 승리하지 않는 싸움은 무력감을 전염시키기 때문이다. 승리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문제는 주체가 ‘우리’가 되지 않으면 승리의 의미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우리는 우리 모두가 ‘우리’라는 이름을 가질 수 있도록 암묵적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한다.

우리가 시위를 통해 학습한 것은 정부는 어지간해서는 우리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과 경찰이 비열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촛불문화제가 말 그대로 문화제의 이름으로만 개최되었을 때 그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해 주었나. 경찰은 비열하게도 늘 우리가 소수고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을 때-즉 약자였을때만을 노려 실적을 올렸다. (이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예는 5월 31일 저녁 청와대 시위대 폭력연행 사건일 것이다. 청와대 근처의 ‘인도’에서 촛불집회를 가지던 50여명의 시위대가 경찰들에게 구타와 욕설을 들으며 진압된 것이다. 그리고 이 사건은 광화문에 머물러 있던 시위대가 청와대로 향하게 하는 도화선이 되었다.) 이를 통해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너무도 명확하다. 손 안 대고 코 풀 수 있는 방법은 21세기에도 개발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제는 설득의 문제다. 정부가 아닌 우리를 향한 설득이다. 어떻게 우리가 우리라는 이름으로 청와대로 진격하는 게 옳은 것이라 설득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이명박 정부의 비상식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장벽을 넘을 것인가. 다시 우리에겐 6월 10일의 스티로폼같은 상상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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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희생 없이는 얻을 수 없는 것인가, 시대는 불행 없이는 넘어설 수 없는 것인가.’

폭력 시위 진압으로 다치신 모든 분들이 쾌차하시길 바란다. 더이상 부상자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정부가 지금과 같은 입장을 고수한다면 이 바람은 바람으로만 그칠 것이다. 정말로 행복은 희생 없이는 얻을 수 없는 것이고, 시대는 불행 없이는 넘어설 수 없는 것일까. 우리는 이 질문을 너무 금새 잊었고 그 때문에 다시 한번 이 거대한 명제를 목격하고 몸으로 부딪히고 있다. 싸움의 특성은 싸움이 진행될 수록 싸움을 촉발시킨 분노의 이유를 잊고 싸움 그 자체에 함몰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싸움은 싸움이 진행될 수록 우리가 무엇 때문에 분노하고 있는지 명확해지고 있다. 교묘하게 감추어져 있던 분노의 대상은 점 점 더 노골적으로 맨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이제 더이상 팔짱 끼고 앉아 방관할 명분은 없는 것이다.
지구를 정복하려는 대괴구 포글라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던 자이언트 로보는 팔을 잃고 눈물을 흘리며 폐허가 된 도시로 추락한다.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았던 자이언트 로보를 다시 깨운 건 다이사쿠의 간절한 외침이다. ‘로보… 내 목소리가 들려? 혹시 들린다면 다시 일어서서 내게로 돌아와 줘. 난 네가 쓰러져서야 비로소 알았어. 지금까지 난 혼자서 BF단과 싸울 생각이었어. 하지만 그건 잘못된 거였어. 왜냐면 우리 곁에는 일청씨와 철우씨, 양지씨, 대종씨, 츄조 장관님과 오선생님 그리고 긴레이씨. 모두가 늘 함께였잖아. 그러니까 다시 일어서서 싸우자. 모두와 함께 싸우는 거야. 자, 돌아와 줘. 로보. 자이언트 로보! 날아봐!’ 이제 쓰러져 있는 민주주의를 향해 우리가 이 외침을 들려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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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블로그에 포스팅을 하지 못했다. 보통 ‘못했다.’라는 표현은 ‘안했다.’라는 표현의 핑계적 수사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번 경우엔 정말로 못했다.(라고 쓰고보니 오히려 더 핑계처럼 들리지만.) 왜 포스팅을 하지 못했는지는 당신도 시대의 공기를 호흡하고 있다면 모르지 않을 것이다. 행동하지 않는 자에게 발언권은 없다.
쌈넷 사무실에 일이 있어 갔다 백현진의 ‘반성의 시간’ 시디를 받아왔다. 집에서 술을 마시며 찬찬히 자신의 이십대를 회한하는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아니 그의 목소리가 술을 불렀다. 앨범은 국민학교 때 골목에서 양복을 입은 아저씨가 ‘대한민국 국민학생 70%의 장래희망이 과학자’라는 통계를 들어가며 팔던 1000원짜리 현미경 겸용 망원경을 생각나게 했다. 비록 그 현미경 겸용 망원경은 내 일주일치 용돈을 털어가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하고 곧 장난감 박스속에 처박혔지만, 이십대 후반에 만난 현미경 겸용 망원경으로 본 세상은 너무도 선명해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조금 부끄러웠다. 이미 그에게 지나버린, 이렇게 기록하는 것으로 밖에 남길 수 없는 이십대를, 아직 온전히 온 몸으로 겪고 있는 내가 갈취한것 같아서. 조만간 레코드점에 들러 음반을 사야겠다. 무엇보다 지금 이 시대에 온전히 ‘앨범’으로 갖고 싶은 음반을 만난다는 건 첫사랑을 다시 앓는 것 같은 축복이니까.
수요일, 캠프에서 사랑니 발치 수술을 받은 우영형과 정말 오랜만에 술을 마시지 않고 얘기를 나누었다. 우영형은 지난 단계를 끝내고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는 것에 대한 얘기를 해주었다. 오늘은 폐업한 여대생 다방의 물건을 옮기기 위해 안데스의 집에 갔다. 창문식으로 되어있는 커다란 문 두겹을 떼어내야 물건을 옮길 수 있는데 문이 빽빽하게 걸려 잘 빠지지 않았다. 끼인 문을 보며 우영형에게 들은 얘기를 다시 떠올렸다. 다시 한번 이 표현을 쓰자면 돌아가지 않는 회전문에 끼인 기분이 들었다. 가만히 앉아 빠지지 않는 문을 골똘히 바라봤다. 몇번 힘을 준 끝에 문은 결국 빠졌다.
이별은 했지만 정리는 하지 못했다. 매일같이 집에서 혼자 술을 마셨다. 집회는 나가지 않고 매일 새벽 시위 중계를 봤다. 또 혼자 술을 마셨다. 그렇게 한달을, 한주를 보냈다. 음악은 거의 듣지 않고 책은 읽지 않았다. 담배를 다시 피웠고 dance & humor creator인 주제에 몸은 움직이지 않았고 그럴듯한 유머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만약 언젠가 2008년 5월을 기록한다면 그 기록은 술병의 갯수와 ‘누드 사진’으로 검색된 리퍼러 수가 될 것이다.
땅만 바라보며 길을 걷다 돈을 주운 것처럼 며칠 사이 새로운 일을 제안 받았고, 새로운 일을 제안하게 됐다. 가지 않는 시간을 원망하며 붙잡고 있던 5월도 기어코 지나고 곧 6월이 찾아온다. 지금 단계를 마무리 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시간이다. ‘다시 그 시간 속으로 들어갈 순 없’을테니. 우선은 토요일 시청 앞 광장에서 촛불을 밝혀야겠다.

jk4.mp3백현진 – 무릎베개

어떻해야 만날 수 있나
어떻해야 만날 수 있나

그 많았던 시간들이 불에 타는걸
난 침대에 누워서 지켜보았지
당신은 천장에 매달려서 춤추고
나는 베개에 얼굴을 묻고 꿈꾸네

그 시간 속에
그 시간 속에
그 시간 속에
그 시간들

어찌하여 이지경이 됐나

계단에 앉아서 당신을 기다렸던
97년 초여름의 빛나던 시간
딸린으로 가는 배의 2층 침대에서
당신에 관한 노래를 부르다 울었네

어떻해야 잊을 수 있나
어떻해야 잊을 수 있나
어떻해야 잊을 수 있나
어떻게해야 당신을 잊을 수 있나

다시 그 시간 속으로 들어갈 순 없겠지
다시 그 시간 속으로 들어가 순 없겠지

당신과의 그 시간들
당신과 나눴던 사랑
당신의 무릎베개에서
눈을 감고 귀를 파며 나는 꿈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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