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보고 계시는 사진 속 음식의 정체는 북아현동 와플하우스에서 판매하는 스페셜 버거라고 합니다. 사진을 촬영한 날짜를 보니 2008년 7월 30일이더군요. 종종 먹던 스페셜 버거지만 이날 유난히 스페셜 버거의 사진을 찍고 싶었고 결과적으로 이 스페셜 버거는 제가 먹은 본래 형태의 마지막 스페셜 버거가 되었습니다.
북아현동에 와플하우스가 처음 생긴건 1989년의 일입니다. 88올림픽 다음 해, 아직 거리에서 호돌이 마스코트가 채 다 사라지지 않았을 바로 그 때이지요. 그때는 아저씨, 아주머니였겠지만 지금은 할아버지, 할머니는 호칭이 더 익숙할, 부부가 바로 그 때 북아현동 올라가는 길목에 와플하우스를 오픈합니다. 1988년, 압구정동에 처음 맥도날드 매장이 생겼고, 웨화스가 아닌 와플의 존재가 우리에게 각인된지 얼마 되지 않았음을 생각할 때 이분들은 서구푸드 시장의 개척자인 셈입니다. 그래서인지 갈 때마다 할아버지께서는 '이대, 숙대 앞에서 와플파는 가게들 다 우리 가게에서 배워가 비싸게 파는거다.'라고 말씀하시는데요. 다른 가게에서 비슷한 연령대의 주인이 이런 얘기를 했다면 허세라 치부하기 마련이지만 가게의 역사 때문인지 그리고 저렴한 가격 덕분인지 신기하게도 이 할아버지의 말은 전혀 허세로 들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제 쪽에서 justice 대신 danger를 찾아 들으며 최고다라 얘기할 때와 같은 허세 가득한 프라이드가 생기곤 합니다.
이곳의 메뉴는 버거류,빙수류, 그외 제가 잘 알지 못하는 (그래서 제가 물어보면 늘 친절하게 이런 재료로 이렇게 만들어지는 요리다 말씀하시지만 늘 다시 까먹곤 하는) 신기한 서구푸드로 나뉩니다. 아마 길모어 걸스에 나오는 미국 시골의 레스토랑에서 이런 메뉴가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그 중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건 저와 구-북아현거주민인 친구의 의견을 종합할 때 역시 스페셜 버거와 딸기 빙수가 아닐까 싶습니다. 스페셜 버거의 가격은 밀가루 파동 후 가격이 조금 올라 2,600원. 딸기 빙수는 3,000원 초반이었던걸로 기억합니다. 스페셜 버거는 햄버거 빵 위에 패티, 양배추,패티,치즈가 얹혀지며 딸기 빙수는 기존의 빙수와 비슷한 형태에 실제 딸기 슬라이스가 얹혀져 있습니다.
와플하우스는 2008년 말 갑자기 '내부수리중'이라는 전단을 붙이고 공사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얼마 후 다시 열린 와플하우스는 하도 오래 되어 글자도 제대로 구분하기 힘든 간판 대신 선명하게 'since 1989'가 적혀진 간판과 홍대에서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카페식 인테리어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주인 역시 할아버지와 할머니 대신 젊은 아가씨로 바뀌었고 대표 메뉴를 제외하고 '신기한 서구푸드'가 메뉴에서 대부분 사라졌습니다. 어찌된 일인지 궁금해 주인 아가씨에게 혹시 가게를 인수하신 거냐 물어보니 인수한게 맞다 애기하시더군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리뉴얼된 가게에서 스페셜 버거를 한번 주문해 먹었는데 그 때 먹은 스페셜 버거는 이미 이전에 제가 먹었던 스페셜 버거가 아니었습니다. 스페셜 버거의 핵심은 해동하지 않고 약한 불에서 오랫동안 후라이팬에 달구어 겉은 바삭하고 속은 야들야들한 냉동 패티에 있는데요. 이곳에서는 패티를 해동한 뒤 센 불에 빨리 굽는 듯 합니다. 그래서인지 패티의 겉은 딱딱하고 속은 밍밍합니다. 게다가 학생들 대상으로 하는 장사라 학생들 점심시간이나 하교할 때를 제외하곤 문을 열지 않아 저처럼 시간개념이 부족한 이는 여간해선 이용하기조차 쉽지 않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더이상 이곳에선 할아버지께서 구구절절히 와플하우스의 역사를 말씀해주시지도 할머니께서 거스름 돈이 남지 않도록 계산을 할 때면 '고마워요.'라고 말씀하시지도 않습니다. 저 역시 스페셜 버거를 살 때 '잘 먹겠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았고요.
음식업종에 있어선 매너리즘, 그 자체인 게토 동네 북아현동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기는 쉽지 않습니다. 저는 가끔 기분이 좋지 않을 때면 굉장히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은 기분이 들곤 합니다. 그럴 때면 와플하우스에서 들러 스페셜 버거를 사 맥주 한 캔과 먹으면 놀랍게도 기분이 매우 좋아집니다. 어제는 주인아주머니와 월세 인상과 관련해 작은 다툼이 있었습니다. 형편이 어려워 월세를 올려야겠다는 주인아주머니와 역시 형편이 어려워 임대차보호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5% 이상 월세는 올리기 힘들 것 같다는 저의 주장이 맞섰고 결국 타협은 보지 못했지요. 둘 다 형편이 어려우면 서로 도와야 할텐데 왜 우리는 형편이 어려워 싸워야 하는 걸까요. 누가 우리의 형편을 동시에 나쁘게 했을까요. 기분이 좋지 않아져 와플하우스의 스페셜 버거를 먹고 싶었지만 이미 스페셜 버거는 다시 먹을 수 없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여전히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 본 글은 '우리 동네'의 것을 아끼고 사랑하려는 마음에서 시작된 '로컬!'에 실은 글입니다. 저는 이 글을 온전히 저의 것으로도 삼고 싶은 욕심쟁이라 '로컬' 소개를 겸해 *cookbook of sound*에도 포스팅합니다. 앞으로 '로컬!'에 올리는 글은 새로 만든 '북아현동' 카테고리에도 올라갈 것입니다. '시내'가 아닌 '다른 동네'에 관심 있는 분들은 방문을, 더 나아가서 '우리 동네'를 같은 방법으로 아끼고 사랑하고 싶으신 분은 참여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